[대구 뉴스 2026-04-26] 이호재, 63년 연극 인생 고백 “환호보다 적막 견디는게 배우 본질
2026-05-04 09:57:09 | 중구문화원 | 조회 33 | 덧글 0

박수에 머물면 예술은 끝난다”
몸으로 부딪힌 연기만이 ‘진짜’
거장들과 호흡한 경험담 전달

이호재
배우 이호재가 지난 23일 봉산문화회관을 찾아 '연극 인생 이야기'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대구중구문화원 제공

 

무대의 조명이 꺼지고 관객의 박수가 파도처럼 물러간 뒤 텅 빈 객석을 마주하는 배우의 등 뒤에는 무엇이 남는가.

한국 연극사의 산증인 배우 이호재가 지난 23일 대구 중구 봉산문화회관 스페이스 라온을 찾아 이 묵직한 질문에 대한 답을 건넸다.

 

대한민국예술원이 주최하고 대구중구문화원이 주관한 이번 특강은 단순한 강연을 넘어 한 예술가가 스쳐온 63년 세월의 기록이자 고백이었다. 연극평론가 김건표의 진행으로 펼쳐진 이날 무대에서 이호재는 원로의 위엄 대신 담담한 말투로 운을 뗐다.

그는 “배우는 박수를 받는 찰나보다 그 박수가 끝난 뒤의 시간을 더 오래 견뎌야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환호 속에 머물고 싶은 인간의 본능을 거스르고, 적막한 일상으로 돌아와 다음 무대를 기다리는 인내심이야말로 배우를 배우답게 만드는 본질임을 시사했다.

그는 나태주의 시를 빌려 “박수 소리에 취해 떠나지 못하고 텅 빈 무대를 서성이는 모습이야말로 예술가가 가장 경계해야 할 태도”라고 강조했다. 과거의 영광에 매몰되는 순간 새로운 인물을 담을 공간이 사라진다는 경고도 함께였다.

강연은 개인의 서사를 넘어 한국 현대 연극사의 궤적을 훑는 시간으로 마련됐다. 유치진, 오태석 등 연극계 거장들과 호흡하며 수많은 무대에 오른 경험담을 통해 지난 60여년간의 시간을 생생히 기록했다.

수십개의 작품을 거치며 세운 원칙은 명확했다. 그는 “한 작품에 머물지 않고 완전히 비워내야만 비로소 다음 인물을 온전히 담을 수 있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끊임없이 제로(0)로 되돌리는 노력이 오랜 시간 현역으로 머무를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대구의 후배 연극인들을 향한 조언에는 선배로서의 애정이 묻어났다. 그는 “대구와 서울의 물리적 거리가 예술의 격차로 이어질 수 없다”며 “연기는 머리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부딪히고 몸으로 익힌 것만이 진짜가 된다”고 독려했다.

강연의 끝자락. 이호재는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을 낭독했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낮은 목소리로 시를 읊는 노배우의 모습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연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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